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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나이듬과 기다림의 허상

by 인생 기술 2022.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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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늘 기다리며 살아온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가,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가, 그리고 고등교육기관, 이어서 직장, 결혼, 자녀, 은퇴까지 계속해서 다음 단계를 은근히 기다렸다. 마치 뭔가 좀 더 나은 인생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도 사회가 허락하는 다음 단계가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었다. 그런데 다음 단계라고는 노쇠와 떠남 밖에 없는 은퇴라는 단계에 진입하게 되면, 정신적 및 육체적 혼란을 맛본다.

직장에 다닐 때, 의료보험 비용에 추가되어 있는 요양보험료라는 항목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지금에 와서 보니, 늙어서 거동이 불편할 때 요양원에 가는 비용에 대한 보험료를 내고 있었다. 그동안 삶에서 습득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를 해보고자 하지만, 급변하는 세상이 라떼식의 지식을 점점 더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직 세상에서 무언가 역할을 할 수 있는 나이의 사람들에게는 노년층의 정신적인 지혜보다는 우선 취업과 경제적인 성공의 노하우가 더 중요하다.

문제는 인간의 심리가 가진 이중성이다. 몸이 건강하고 세상에서 아직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때는 세상이 통제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돈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병이 들거나 홀로 거동할 수 없는 노쇠한 상태에 진입하면, 갑자기 세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내가 선장이 되어 배를 조종하여왔다. 그런데 은퇴라는 커튼이 올려지면, 갑자기 핸들이 달린 내 배가 사라지고 동력이 없는 작은 조각배가 망망대해의 파도에 이끌려 떠다니게 된다. 이때부터는 그동안 등한시하였던 정신적인 양식이 필요해진다. 심지어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점점 더 고집만 세질 수도 있다.

사람의 얼굴, 특히 눈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세월의 흔적이 기록되어 있다. 나이가 들수록 평온한 얼굴 표정이 필요하지만, 실제로는 은퇴 이후 노년층의 평균적인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너무 진지한 모습이 담겨있다. 자신이 평생 살아온 가치관과 판단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과거의 신념을 떠나보내는 것이 좋다. 직장 핑계로 등한시했던 집안 일도 많이 하고, 남만 보고 살았던 마음을 고쳐서 이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살아야 한다.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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